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즈텍 제국/인신공양 (문단 편집) == 소멸 ==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걸 직접 목도한 [[스페인 제국]]의 [[콩키스타도르]]들과 [[선교사]]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. 콩키스타도르들이 다 신실한 자들은 아니었지만,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고, 야만 그 자체였다. 게다가 남편을 따라 [[멕시코]]에 왔던 [[https://www.eluniversal.com.mx/cultura/patrimonio/mexicas-sacrificaron-espanolas-embarazadas-durante-la-conquista|스페인 출신의 여성들]]이 [[아즈텍인]]들에게 사로 잡혀 [[인신공양]]되고 [[식인]]까지 되는 일까지 있었으니 [[아즈텍]]의 풍습이 당시 [[스페인인]]들에게 매우 끔찍하고 사악한 행위로 보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. [[유럽]] 국가들의 경우, 고대에는 인신공양 제례가 있었다고는 하나 [[기독교]] 전래 이후에는 [[이사악|고대 레반트 지역의 인신공양 풍습이]] [[성체성사|상징화되어 빵과 포도주를 살과 피라고 말하는 제사]]를 빼면 완전히 사라졌고[* [[로마 제국]] 내부에서는 [[하드리아누스]] 대제 이후 사라졌으며, 로마 외부의 [[야만족]]들인 [[바이킹]] 및 [[슬라브]]도 기독교 전래 이후 이런 풍습이 사라졌다. 단, [[아메리칸 인디언]]들과 같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대규모로, 그것도 '자주' 이루어지는 일상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. 또한 [[유라시아]]에서는 같은 지역 내에서도 인신공양 유무가 달랐고, 바이킹 이전 시대인 유라시아 내 [[청동기 시대]] 전투 유적을 봐도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은 곳은 전무했다.] [[중국]]도 시황제의 [[진(영성)|진나라]] 이후 사라진 풍습이었다. [[순장]] 풍습은 진나라 이후 사라졌다가 몽골족의 [[원나라]] 때 부활해서 만주족의 [[청나라]] 초까지 지속되었지만, 하늘에 제의를 올릴 때 사람을 바치는 것과는 별개였고, [[한나라]] 성립 이후 [[유교]]가 보편화되면서 제아무리 전제군주라 하더라도 순장을 강행하는 것은 신하들의 큰 반발을 부를 것을 각오해야 했기에 대부분 군주가 죽기 직전에야 명령을 내리곤 했다. 그나마도 후계자가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선왕의 순장 요구를 거부하는 일도 많았다.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[[북유럽]]도 기독교가 보편화된 이후 인신공양 풍습이 사라졌으며, 이후 인신공양은 그 어떠한 [[종교]]가 보더라도 사라져야 할 문화였다. 일례로 [[스페인]]에선 [[아우구스투스]] 황제가 스페인 전역을 정복한 이후 완전히 사라졌으니 말 다한 셈이다. [[에르난 코르테스]]와 선교사들이 아즈텍 원주민들을 [[가톨릭]]으로 개종시킬 필요성을 느낄 정도였다. 코르테스는 아즈텍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물러나던 도중 대대적인 인신공양 제의를 보고 경악해 [[대포]]로 제단을 부수고 [[석궁]]으로 사제를 저격하는 등 온갖 [[깽판]]을 친 뒤에 제물로 바쳐져 죽음을 기다리던 이들을 구출했다. 이때 목숨을 건진 자들이 10,000명이 넘었다고 하니, 얼마나 대대적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. 이때, 구출된 자들로부터 사연을 들은 코르테스 일행은 인신공양이 벌어진 이유가 [[말(동물)|말]]/[[소]]/[[돼지]]/[[양(동물)|양]] 같은 대형 [[가축]]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하였고, 코르테스가 사비를 털어 일단 사육 난이도가 낮고 번식율이 엄청 높은 [[돼지]][* 한 번 태어날 때마다 10[[쌍둥이]]는 기본이다.]를 구해서 키우게 했다. 그 후 잠깐 스페인에 갔다 온 사이 돼지는 엄청나게 불어난 상태였다고. 그러나 스페인의 [[멕시코]] 일대 정복 이후 피의 의식을 금지시키고, 가축들이 대거 들어온 뒤에도 인신공양 풍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는데, 인신공양을 부추긴 가장 큰 원인이 종교였기 때문이다. 애초에 통치권과 인육 섭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변형된 종교가 오랜 세월 공고화되어 제국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이러한 인식을 하루아침에 뿌리뽑기에는 힘든 상황이었다. 인신공양과 인육 섭취를 막으려면 이 종교부터 어떻게든 하루아침에 뒤집어야 했는데, 이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너무나도 신기한 우연이었다. 다름이 아니라 '''이들의 인신공양 교리가 가톨릭의 [[성체성사]]와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.''' 심지어 '''인신공양 외에도 옥수수 가루를 사람 모양으로 반죽한 또띠아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도 이미 존재했다.''' 이 시점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의 전도 전략은 매우 명확하게 정해질 수 있었다. '[[또띠아]]로 만든 성체'와 '코치닐 염료로 염색한 음료'를 이용해서, 누구보다 고귀한 제물인 [[예수|신의 아들]]이 [[성체성사|인신공양되어 세상의 멸망을 늦춘 사건을 매주 재현]]하는 것이었다. 이 대체는 메소아메리카인들에게 거부감은 커녕 커다란 열광을 불러일으켰다. 세례성사 역시 몸과 영혼의 병을 고치는 신비한 의식으로 여겨져 너무나 쉽게 받아들여졌고, 심지어 세례를 여러번 받는 원주민들[* 사실 고대 로마에서 초기 기독교가 퍼져나갈 때도 같은 일이 흔하게 있었으니 메소 아메리카인들이 유별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. 좀 더 교리가 발전해서 세례를 여러번 못 받게 된 뒤의 로마에서도 별 다를바 없어서 죽기 전에 세례를 받는 사람이 많았다. ~~세례를 받으면 모든 죄를 용서 받는다고? 그런데 세례는 한번 밖에 안해준다고? 그럼 죽기 전에 받으면 되지!~~그런 사례 중 제일 유명한게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일것이다.]도 자주 나타났다. 그렇게 스페인인들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엄청난 속도로 가톨릭을 전파했고, 코르테스의 도래로부터 불과 수십년만에 주요 도시와 국가들에서 인신공양 의식을 박멸하는데 성공했다. 아즈텍의 대규모 인신공양은 그 의식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했으나, 스페인인들에게 그런 주요 국가들이 정복된 이상 수행할 수 없었다는 점도 원인이었다. * 출처: [[https://ism.yale.edu/sites/default/files/files/Sacred%20Blood.pdf|〈Sacred Blood: The Liturgy of Human Sacrifice (in a Christian Context)〉. Jaime Lara]] [각주]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아즈텍 제국, version=1001)][[분류:아즈텍]][[분류:식인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